[Why] 한손엔 법전, 한손엔 게임기… 이 시대가 원하는 '바로 그 변호사'

  • 강동민 벤처캐피털리스트·뮤렉스파트너스 부사장

    입력 : 2018.03.02 14:26

    [강동민의 넥스트 빅 웨이브]

    스타트업들이 환호
    게임에 빠졌던 변호사 최성호의 로펌 '비트'
    게임회사 사장만큼 스타트업 환경 잘 알아
    수백만원 상당 계약 양식 무료로 나눠주기도

    게임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A씨는 최근 벤처 투자 유치에 관한 법률 상담을 위해 한 법무법인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엄숙한 분위기일 것으로 예상했던 법무법인 사무실에 게이머 전용 PC, TV 전용 콘솔게임기,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기 등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 시작 전 게임을 즐기셔도 된다"는 직원의 안내에 A씨는 준비된 최신 게임들을 이용했다.

    법률 상담도 A씨가 이전에 해왔던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기존 법률 상담에선 A씨가 직접 변호사에게 게임과 IT 산업에 관한 기초 지식부터 설명해줘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법무법인의 담당 변호사는 게임 시장 전반을 잘 알고 있었다. 게임 업계의 최신 기술에 대해서도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미팅 후 A씨는 이곳을 법률 파트너로 선택해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로펌계의 IT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는 법무법인 비트의 이야기다. 최성호 대표변호사는 학창 시절 아마추어 게임의 '고수'였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만 3만 승 이상을 거두었다는 최 변호사는 게임이 좋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소프트웨어 연구라는 취지로 실컷 게임을 해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낮에는 프로그래밍 공부에 매진하고 밤에는 서울대 근처 녹두거리 PC방에서 아마추어 게이머로 활동했다. 20대 중반에는 게임과 IT 산업을 주요 무대로 하는 법률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수년간의 고시생 생활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법률과 회계 같은 전통의 전문 직종에도 IT 산업발(發)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IT 산업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문 지식 서비스업도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필자 주변의 IT 스타트업 경영진 대다수가 대형 법무법인·회계법인보다 IT 기술과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소규모 전문 회사와 일하기를 선호한다.

    기술과 시장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 하지 않아도 되고 몸집이 작아 업무 처리 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비트는 최근 스타트업 모두싸인과 함께 스타트업 계약서 양식을 무료로 배포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형 로펌을 통해 최소 수백만원을 지불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범용 지식은 무료로 또는 값싸게 제공하고, IT 기술 관련 전문성을 바탕으로 남다른 법률 조언을 제공하는 데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두나무, 버즈빌 등 굵직한 IT 스타트업과 케이큐브, 알토스 등 유명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비트에 법률 조언을 맡기고 있다. 필자 역시 단순한 법률 상담을 넘어 블록체인 등 신기술에 대한 부분까지 조언을 받고 있다.

    IT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법률과 회계 등 전문 지식의 영역을 혁신하는 기업이 더욱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 이런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법률과 제도가 얼마나 기술의 발전 속도를 뒷받침할 수 있느냐에 있다. 스타트업들이 사업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할 IT 산업 인프라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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