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 BIZ] 세계 최대 규모 벤처펀드 "미래 사회 이끄는 젠트리 역할 할 것"

    입력 : 2017.10.13 14:53

    비전펀드 투자처는
    미국 신기술 업체가 대부분
    일본 기업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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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난 8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실적 발표 기자회견에서 비전펀드의 투자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블룸버그
    지난 5월 20일(현지시각) 금융 역사상 세계 최대 규모 벤처 투자펀드가 출범했다. 무려 930억달러(약 105조원) 규모다. 작년 한 해 동안 결성된 전 세계의 벤처캐피털 투자펀드 총액(약 70조원)을 넘어설 정도다. 미래 테크놀로지에 집중 투자하는 '비전펀드'가 그 주인공이다. 투자 자금은 일본 소프트뱅크(250억달러)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PIF(450억달러)가 주도했고, 미국 애플과 퀄컴, 대만 폭스콘, 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무바달라 등이 참여했다. 연말까지 추가로 70억달러를 조달해 '종잣돈 1000억달러짜리 투자펀드'가 될 전망이다.

    전 세계 테크 업계의 이목은 이 펀드가 투자할 신기술과 벤처기업에 쏠리고 있다. 이 펀드의 결성을 주도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7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월드 2017'에서 "과거 산업혁명을 일으킨 기술이 인간의 신체 능력을 확장시켰다면 앞으로는 인간 지능의 확장이 핵심"이라며 "(비전펀드가) 미래 사회를 이끄는 젠트리(gentry)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산업혁명은 인간의 손발을 대신해 공장을 움직이는 기계 기술이 주도했지만, 이제부터는 인간처럼 사고하는 기술이 정보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비전펀드는 19세기에 증기기관 등 당시 신기술에 투자한 영국 자본가 계층인 젠트리처럼 정보혁명을 이끌 '테크 젠트리'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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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건물 벽면을 따라 수직으로 농작물을 대량생산하는 플렌티의 ‘버티컬 파밍’ 기술. ②임프로버블이 가상현실(VR) 영상으로 구현한 영국 런던 시내 모습. ③나우토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센서를 탑재한 자율주행차량. ④ 자율주행 기능이 있는 브레인코프의 스마트 로봇./플렌티·임프로버블·나우토·브레인코프 제공
    비전펀드 투자기업 살펴보니… 바이오·로봇·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에 집중

    본지가 비전펀드가 공개한 투자기업 12곳을 분석한 결과, 실리콘밸리·뉴욕 등에 본사를 둔 미국 회사가 9곳으로 대부분이었다. 미국이 본사가 아닌 기업은 영국 2곳과 인도 1곳에 불과했다. 일본 기업에는 한 곳도 투자하지 않았다. 또 창업자나 최고경영자(CEO)는 이공계 박사 학위를 받은 경우가 대다수였고 연령대는 30~40대가 가장 많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창업자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은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 한 곳밖에 없었다.

    비전펀드가 투자한 대표적인 기업은 농업 스타트업 플렌티(Plenty)와 자율주행 로봇 기술회사 브레인코프(Brain corp)이다.

    2억달러(약 2270억원)를 투자받은 플렌티는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고, 창업자는 와이오밍대에서 농업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렌티는 담쟁이를 기르듯 건물 내부 벽면과 기둥에서 케일·상추 등 작물을 대량생산하는 '버티컬 파밍(vertical farming)' 기술을 가지고 있다. 같은 면적의 농지보다 350배 많은 소출이 난다. 플렌티는 물 소비량을 99% 줄이고 살충제와 유전자변형기술(GMO) 없이, 고품질 유기농 작물을 대량 재배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손 회장은 "플렌티는 우리의 식량 생산체계 자체를 뒤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둔 브레인은 1억1400만달러(약 1290억원)를 투자받았다. 이 회사는 물류 창고나 쇼핑센터에서 일하는 로봇이나 청소 로봇 등을 개발한다. 로봇이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지해 사람과 장애물을 피해 가며 물건을 나르거나 짐을 치우는 일을 하는 기술이다. 이 회사는 로봇을 움직이는 두뇌인 운영체계(OS) '브레인OS'를 독자 개발했다. 이 OS를 탑재하면, 공장이나 가정의 단순 작업 로봇들이 지능을 가진 스마트 로봇으로 변신한다. 유진 이즈히케비치 CEO는 "지능을 가진 로봇은 앞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흔한 기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데이터 수집해 '기계 두뇌' 개발…인간 지능 확장이 핵심

    비전펀드는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소프트뱅크의 투자 회사에 추가 투자하거나, 아예 소프트뱅크의 투자 지분을 이관받은 사례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가상현실(VR)기술 기업 임프로버블, 바이오 기업 가든트헬스, 자율주행차 기술 기업 나우토 등은 본래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곳으로, 비전펀드가 이를 이어받았다. 케임브리지대 컴퓨터공학과 출신들이 만든 영국 벤처기업 임프로버블은 5억달러(약 5670억원)를 투자받았다. 이 회사가 개발한 VR 소프트웨어 '스페이셜 OS'는 360도 상하좌우를 모두 표현해야 하는 VR 콘텐츠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VR동영상·VR게임뿐만 아니라 앞으로 자율주행차량에도 활용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3억5000만달러(약 3970억원)를 투자받은 가든트헬스는 혈액검사만으로 암을 진단하는 액체 생검(Liquid biopsy) 기술 '가든트360'을 가지고 있다. 혈액에 돌아다니는 유전자 속 암세포 조각을 발견해 분석하는 기법이다. 기존 암 검사보다 훨씬 간편하고 신속하게 진단할 수 있다. 데이터가 많아야 검사 정확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가든트헬스는 비전펀드 투자금을 향후 5년간 100만명에게 '가든트360'을 테스트하는 데 쓰기로 했다.

    자율주행차 기술 기업 나우토는 1억5900만달러(약 1800억원)를 투자받았다. 나우토는 차량 내·외부에 설치된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주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 인공지능(AI) 분석을 통해 운전자와 도로 상황을 판단한다. 자율주행차 완성을 위한 핵심 기술로 꼽히는 '차량의 인지·판단' 분야의 강자다. 비전펀드는 지난 8월 미국의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30억달러)와 스포츠용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 파나틱스(10억달러), 인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플립카트(25억달러) 등에도 투자했다. 또 영국 모바일 반도체 회사 ARM과 미국 그래픽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지분의 일부를 비전펀드에 현물 출자하는 방식으로 비전펀드의 투자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실시간 데이터 분석 기업 OSI소프트, 저궤도 위성 600개를 쏘아 올려 전 세계를 잇는 초고속 통신망을 조성하는 계획을 가진 통신위성 회사인 원웹 등도 비슷한 사례다.

    뉴욕타임스는 "비전펀드의 투자 기업들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인공지능처럼 '기계의 두뇌'를 개발하고 있다"며 "이들의 신기술은 앞으로 인류의 미래를 더욱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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