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돈 주고 트래픽 사다니…

    입력 : 2008.07.16 13:54 | 수정 : 2008.07.16 17:11

    다음 시작페이지 점유율 7주만에 4.38% 상승... 다음의 트래픽은 촛불정국이 본격화되는 4월말부터 뉴스, 검색의 트래픽 상승이 강하게 일어났고 5월 말부터는 시작페이지 점유율 상승으로 확대되고 있다. 시사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촉발된 뉴스, 검색관련 트래픽 상승이 가입자 이동으로 연결되고 있다. 최근 트래픽 상승은 단기 이벤트를 넘어 장기적인 펀더멘털 개선 가능성을 시사한다.”

    CJ투자증권이 지난 15일 낸 보고서입니다. 최근 거의 매일 비슷한 증권사 보고서와 이를 인용한 기사들이 쏟아지더군요. 간단하게 말해 촛불시위와 아고라가 다음의 트래픽을 끌어 올리고 있으며 이것이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이런 보고서를 보고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곧 사실이 알려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용감한(?) 보고서와 그걸 보고 쓴 기사들이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더군요.

    잘 모르면 용감해 진다

    굿모닝신한증권은 지난 8일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촛불시위가 확산되면서 다음의 트래픽은 2개월 연속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토론 게시판 '아고라(agora)'에 대한 이용률 급증으로 촉발된 트래픽 유입은 뉴스 섹션을 시작으로 확산돼 검색쿼리 점유율 증가, 시작페이지 점유율 증가 등으로 이어지며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일단 다음 직원들도 극소수만 아는 최근 다음 트래픽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아고라와 촛불은 잊어주십시오. 한마디로 다음은 트래픽을 돈을 주고 샀습니다.

    지난 5월 어느 날 제 노트북 컴퓨터 시작 페이지가 다음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집에서 사용하던 데스크톱도 시작페이지가 다음이더군요. 제가 바꾼 건 아니였습니다. 잠깐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무슨 프로그램을 설치했나? 이스트소프트의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스트소프트 김장중 사장에게 물어봤습니다. “다음쪽에 트래픽을 주는 내용의 계약을 했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스트소프트의 알집을 설치하면 시작페이지를 다음으로 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나오는 대화창에 무조건 ‘네’를 눌러댑니다. 그 결과 제 컴퓨터 시작페이지가 다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트래픽은 돈이다, 돈 주고 트래픽을 산 다음

    이스트소프트는 국내 유틸리티 소프트웨어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업체입니다. 이스트소프트가 만든 알집 사용자가 1400만명입니다. 알약은 1100만명, 알씨는 1000만명에 달합니다. 알툴바도 950만명으로 1000만명급입니다. 이밖에 알송, 알패스 등 회사에서 기타 프로그램으로 분류하는 제품들도 사용자 숫자가 수백만명에 달합니다.

    이스트는 현재 알집과 알씨 사용자들이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업그레이드를 할 때 시작페이지를 다음으로 바꿀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이스트 프로그램을 설치하다가 얼떨결에 다음을 시작페이지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 숫자는 이미 엄청난 규모입니다.

    다음은 “5월엔 2만4000명, 6월엔 25만2000명, 7월 들어 15일까지 60만명이 이스트 프로그램을 설치하면서 다음을 시작페이지로 설정했다”고 밝혔습니다. 90만에서 좀 빠지는군요. 오늘이 16일이니 아마 지금쯤 90만명 정도까지 올라갔을 것입니다.

    한국엔 3000만개 컴퓨터가 있고, 그 가운데 약 2000만개엔 이스트소프트가 만든 프로그램이 깔려 있습니다. 이스트소프트측은 “프로그램을 깔면서 시작페이지를 변경하는 비율은 현재 30% 정도”라고 합니다. 단순 계산하면 2000만대 가운데 30%면 컴퓨터 600만대 웹서핑 프로그램 시작페이지가 앞으로 다음으로 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4월말 다음 석종훈 사장을 만났을 때 “빨리 이스트소프트와 계약을 하고 싶다”고 말하던 석 사장의 얼굴이 떠 올랐습니다.

    다음 아고라에서 “PC방에 갔더니 웹서핑 프로그램 시작페이지가 다 다음으로 바뀌어 있었다”는 글을 몇 번 봤습니다. 여러 명이 사용하는 공용 PC의 경우 시작페이지가 달라져도 다시 바꾸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아고라 사용자의 힘이라는 주장은 좀 공허한 이야기입니다.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시작페이지를 네이버로 한 PC 숫자는 1980만대입니다. 다음은 1070만대네요. 아마 7월엔 숫자가 좀 더 좁혀져 있을 것입니다. 7월 15일까지 보름간 60만대 시작페이지가 다음으로 바뀌었으니 한 달에 120만대가 바뀐다고 가정하면 답이 나오죠. 더구나 네이버를 시작페이지로 한 PC가 다음을 시작페이지로 바꾸면 효과는 2배입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한국 인터넷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1, 2위 포털의 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얼떨결에 시작페이지를 바꿨다가 다시 원래 사용하던 시작페이지로 바꾸는 사람이 상당히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다음이 새로운 트래픽을 지킬 힘이 있는가입니다. 지난 5월 네이버 주요주이면서 CTO(최고기술책임자)인 이준호 박사를 만났을 때 이 박사가 “이스트소프트와 협력, 제휴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나네요.

    시작페이지를 바꾸는 것 이외에 이스트는 다음에 직접 검색 트래픽도 주기 시작했습니다. 웹서핑 프로그램을 보조하는 프로그램인 알툴바 검색창이 다음 친화적으로 변했습니다. 알툴바를 설치하면 조그만 검색창이 하나 생깁니다. 굳이 검색 사이트에 안가도 그 검색창에 알고 싶은 단어를 집어 넣으면 정보를 찾아 줍니다.

    과거 알툴바를 설치하면 네이버, 구글, 다음 등 여러 검색 엔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다음이 기본으로 정해져 있고, 다른 검색엔진을 원하면 설정을 바꿔야 하더군요. 다음은 "현재 전체 검색 가운데 0.3%가 알툴바를 통해 이뤄진다"고 밝혔습니다.

    다음과 이스트소프트는 어떤 계약을 했을까요? 물론 대외비입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계약은 대부분 소위 미니멈 개런티가 있고 트래픽에 따라 돈을 더 지불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말하자면 월 최소한 얼마를 주고 트래픽이 많으면 추가로 정산하는 방식입니다. 계약 기간은 1년이라고 들었습니다. 다음은 상당한 대가를 치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내부에서 최근 트래픽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한 팀장급 직원은 "아고라 트래픽은 한때 몇배 올라 갔고, 아고라가 있는 미디어다음 트래픽은 20~30%까지 올라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전체 트래픽은 촛불 이전에 비해 늘었다고는 하지만 오차범위 안에서 움직인다"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요즘은 아고라와 미디어다음 트래픽도 하향추세입니다.다음도 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다음의 트래픽은 당분간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곧 오차 범위를 벗어나겠죠. 문제는 트래픽을 끌어 올린 것이 자체 경쟁력이 아니라 돈이라는 점입니다. 다음 직원들도 계약 당사자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런 계약이 있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더군요. 정말 궁금한 것은 왜 이걸 사람들이 모르는가입니다. 다들 이스트의 알 시리즈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을텐데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조차 이걸 왜 모를까요? 세상엔 참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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